저는 가속주의자입니다. 인류의 모든 문제는 결국 [에너지 부족]{에너지는 식량, 자원, 돈, 욕망과 등가치환됩니다.}에서 오니, 인간이 가장 신경 써야 할 일은 더 많은 에너지를 호령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에너지 [맬서스 트랩]{맬서스 트랩은 영국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내놓은 가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만 늘어, 결국 식량 부족에 따른 빈곤과 인구 감소가 반복된다는 비관론입니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결책이 아니라 돌파구가 필요하고]{해결책은 문제를 풀지만 돌파구는 문제를 무효로 만듭니다. 지난 맬서스 트랩도 배급이 아니라 하버-보슈법이라는 돌파구로 끝났습니다.}, 그 답은 핵융합에서 나올 것 같습니다. 요즘은 스텔라레이터를 재미있게 공부합니다. 언젠가 핵융합로를 만든다면 금동대향로 모양이 참 멋있겠다 싶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고 1년에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합니다. 저도 이 문제의 희생자입니다. [하루 만에 만들어 배포한 앱이 주간 활성 사용자 23만 명을 모으는 경험]{75만 방문, 50만 설치. 결말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내용증명이었습니다}을 하고 나면 하루를 과대평가하는 병이 좀처럼 낫질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계획과 납기의 중요성을 자주 실감합니다. 속도가 중요한 건 출시까지의 시간 때문이 아니라, 가장 먼저 바닥나는 자원인 의지력이 마르기 전에 유의미한 지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건강에 관심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부자들이 왜 건강검진에 수억씩 쏟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몸이야말로 자기가 못 고른 유일한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인간은 말하자면 카본 컴퓨터이고, 자의식은 그 위에서 돌아가는 더 고차원적이고 값지고 유능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육체와 정신을 관념적으로 나누면, 자신을 낡은 하드웨어에 발목 잡힌 영혼으로 여기게 됩니다. 둘을 완전히 떼어낼 수는 없으니, 결국 몸을 잘 돌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제 하드웨어 [관리 성적]{{mini/health}}은 부끄럽습니다.
저는 공격적인 얼리어답터입니다. 미완성 제품에 비싼 값을 치르는 건 그 물건 자체가 아니라 만든 사람들의 철학 백서를 사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제품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최첨단 아이디어를 모으다 보면 제 머리도 기민하고 예리하게 유지됩니다.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입니다.[예를 들어 노션은 2018년에 처음 써봤고]{엄청나게 느리고 버그투성이였던 기억만 납니다. 다시 쓰기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옵시디언은 2022년부터 써왔습니다.
저는 인본주의자입니다. 경제가 선행하고 사람이 거기 맞춰 직업을 고르는 게 아닙니다. 요컨대 시간, 집중력, 책임감, 협동력, 자신감, 체력 같은 것으로 할 일이 정의되고 경제는 그 결과로 도출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시가 1시간 통근권에 맞춰 자라났듯]{{0F3111}} 경제도 사람이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의 양만큼 새 영역으로 넓어집니다. 기술은 자유의지를 넓혀서, 예전엔 어렵던 일을 새로운 할 일로 끌어들입니다. 때문에 불행 중 다행은 기술이 발전해도 사람이 일자리를 잃지 않습니다. 이렇게 새로 확장된 일을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줍니다. 기술은 인간에게 새로운 목표와 기준과 욕망을 계속 발명해 줍니다. 자유의지의 가소성은 그런 식으로 세상을 넓혀 왔습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기술 폭발의 꼭두각시인가요? 아마도 그렇겠지만 완전히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기술 가속은 확장의 동력을 제공하지만 방향까지 정하진 않습니다. 확장의 방향은 우리가 직접 정합니다. 그래서 기술 가속은 구세계를 포화시키는 종말 장치가 아니라 신세계를 개척하는 인지적 교통수단입니다. 제게는 가장 인본주의적인 꿈입니다.
저는 AI가 뛰어난 입맛을 습득할 것이라는 주장을 강력히 부정합니다. 그렇게 금방 따라잡을 수 있고, 또 따라잡는 걸 목표로 삼을 만큼 입맛이 중요한 거라면, 똑똑하고 돈 많은 집단, 적어도 대기업쯤은 벌써 맛깔난 제품을 찍어내고 있어야 합니다.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입맛 좋은 리더가 있는 몇몇 회사를 빼면 아직도 휴먼 슬롭을 만드는 곳이 수두룩합니다. 게다가 입맛은 계속 진화합니다. 좋은 입맛은 완료된 상태나 목표가 아니라 끝이 없는 의식적인 의도와 습관입니다. Liquid Glass를 흉내 낼 수 있어도, 그걸 만든 사람의 첫 발상과 사고 과정, 버려진 아이디어들, 지금 수준까지 다듬으며 느낀 아쉬움과 대안을 찾아내는 감각까지는 못 따라옵니다. AI의 입맛은 언제나 패스트 팔로워일 겁니다.
저는 심미가입니다. 오래전부터 UI와 UX를 정말 좋아했고, 쫀득한 서비스라면 사족을 못 씁니다. 웹에서는 Vercel과 Linear를, iOS에서는 Zenly 4.0, Airbnb, Luma, Bevel 같은 앱을 좋아합니다. 특히 애플의 휴먼 인터페이스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르는 앱을 좋아합니다.
저는 어원학자입니다. 단어를 정의하고 만들어내는 일(혹은 그러겠다고 결심하는 일)은 자유로운 영혼만이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고어와 조어를 좋아해서, [개부심]{장마로 큰물이 난 뒤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퍼붓는 비가 명개를 부시어 낸다는 순우리말. 비유적으로 아주 새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옛말을 찾아내면 하루가 즐겁습니다. 두문자로는 [두그열]{{E84BFC}}, 연호로는 [誠鉉]{{E95CAB}}, 사자성어로는 [強力反權]{{2592EA}}를 직접 만들어 씁니다. 만물을 작명하는 사람의 아이러니로, 정작 제 [아호]{{8A1CBA}}는 아직 못 찾았고, 핸들 anaclumos마저 [우연히]{{A798A0}} 생겼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지만 한민족에는 큰 책임을 느낍니다. 한민족의 전통문화에는 아직 깊이 파헤쳐지지 않은 멋진 이야기가 많은데도 세계 기준에서는 여전히 촌스럽게 여겨집니다. 충분히 되새김질될 기회가 없었던 탓이라고 봅니다. 그리스 로마 문화를 봅시다. 기원전 그 모습 그대로는 현대의 눈에 촌스럽기 짝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지금 고급 문화로 자리 잡은 건, 16세기 피렌체가 그 재료들을 수백 년에 걸쳐 훨씬 세련되게 재구성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문화는 쪽팔리고 촌스럽게 시작합니다. 되새김질되지 못한 한민족 문화를 할리우드 잣대로 보는 건, 다섯 살 아이의 삐뚤빼뚤한 그림을 입시 미술 기준으로 채점하는 격입니다. 그 5살이 자라서 다음 피카소가 될지도 모르는데요! 저는 이 되새김질에 [신한국 르네상스]{{A39EC8}}라는 이름을 붙여뒀습니다.
저는 한때 투자에 열심이었습니다. [퀀트 엔진]{{BEC9CB}}을 직접 굴렸었고, 2024년에는 토스증권 리더보드에서 주간 1등을 두 번 잠깐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끝없는 정보 홍수와 지식의 저주에 지쳐, 괜찮다 싶은 회사 몇 개에만 적립식으로 넣습니다. 재미있는 버릇이라면 고폐와 채권도 모읍니다. [수집은 집안 내력인 것 같습니다]{{27E083}}. 거창한 뜻은 없고, 한때 어마어마한 위상을 지녔던 누군가의 빚을 물건으로 손에 쥔다는 게 그저 매력적입니다. 최근엔 1950년대 소련 채권을 샀습니다.
저는 게임이라도 즐겨야 집중력 가뭄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오랜 체력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콘솔 게임은 문학과 다를 바 없습니다. 소설이 19세기의 문학, 영화가 20세기의 문학이었다면 [게임은 21세기의 문학입니다]{{41F737}}. 좋은 게임을 제대로 감상하고 음미하는 건 기술이자 특권입니다. 좋아하는 작품은 고스트 오브 쓰시마, 데스 스트랜딩 1 & 2,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스플래툰 3, 슈퍼마리오 오디세이와 원더, 산나비, 라스트 오브 어스 1(그리고 2, 사실 전 2도 괜찮았습니다), 스파이더맨 1& 2쯤 됩니다. 그래도 제 인생 원탑은 단연 리듬세상 & 리듬천국 시리즈입니다!
저는 컴퓨터과학이 여는 새로운 지식의 지평을 열망합니다. 하지만 같은 기술이 인류의 뜻깊음을 좀먹는 데 쓰일 수도 있다는 걸 압니다. 그걸 알면서도 저 역시 종종 디지털 미디어에 중독됩니다. 컴퓨터로 밥 벌어먹는 사람이 어떻게 소프트웨어를 경계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오랜 시간 "소프트웨어가 좋아"와 "소프트웨어는 무조건 좋아"를 떼어놓는 법을 익혔기 때문입니다. 원자력을 지지하는 것과 원자탄의 파괴적 격노를 지지하는 건 다릅니다. 그래도 업계 사람으로서 인터넷에서 완전히 독립하기는 어렵다고 결론지었고, 온갖 방법을 시도 중입니다. 2019년엔 iOS 6가 도는 3GS를, 2026년엔 iOS 16이 도는 SE1을 써봤고, 미니멀폰, 사이드폰, 라이트폰까지 다 써봤지만 하나같이 한 군데씩 아쉬워 참 어렵습니다. 도구는 사라져야 하는데 덤폰은 오히려 기기를 하나 더 늘립니다. 좀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세상에는 자아가 부족합니다. 열네 살 무렵 저는 개성과 창의성과 꿈을 따로 격리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중에서도 개성이 모든 것의 출발점입니다. 저는 개성보다 색채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색채의 상당 부분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되어가기 마련입니다. 저는 이걸 생존 문제로 받아들였습니다. 개성이 없으면 나라는 메타포는 죽은 셈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누구인지는 이제 어느 정도 중심을 잡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보가 존재하느냐보다 실체가 드러나느냐가 중요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나라는 개성이 어딘가 실제로 가닿을 수 있는 [물리적인 무언가]{2021년에 소원으로 적었던 그 '물리적인 무언가'가,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사이트입니다.}로 바뀌었으면 했습니다. 아무튼, 살다 보면 아무 저항 없이 주변에 휩쓸리기가 참 쉽습니다. 남들이 하니까 하고, 보니까 보고, 해야 한다니까 한다! 생각보다 자주 벌어지는 일인데, 정작 '왜?'라고 물으면 답이 없습니다. 답을 찾으려면 나다움을 알아야 하는데, 나다움은 한여름 바람 소리보다도 작고 희미합니다. 그래서 자아는 [발굴]{자아는 아주 초라한 일화들이 재발견되고 신격화되며 만들어집니다}해야 합니다. 개성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살피고 기록하고 파고들어야 비로소 '나 이거 좋아하네?' 하고 알게 됩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제 개성에 마음껏 투자하기로, 뭔가를 좋아하면 부끄럼 없이 강렬하게 드러내기로 했습니다. 그 보상으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을 얻었습니다. 「이건 딱 봐도 조성현 ㅋㅋㅋㅋ」
저는 접근성과 국제화에 집착에 가까운 관심이 있습니다. 이유는 크게 둘입니다. 첫째, 미국에 살 때 현지 문화나 언론에 다가서는 데 문턱을 느꼈습니다. 뛰어난 한국인 친구들이 언어 장벽에 기회를 놓치는 걸 보며, 언어 장벽이 의도와 무관하게 새로운 차별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둘째, 접근성과 국제화를 잘 챙긴 제품일수록 장인정신과 배려, 꼼꼼함이 배어 있습니다. 나머지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야 비로소 그런 것까지 신경 쓰기 때문입니다. 제품의 장인 정신을 빠르게 측정하는 가장 좋은 메트릭입니다.
저는 아주 외향적인 성격이…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똑똑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그리고 그 방에서 제가 제일 부족한 사람인 상황을 좋아합니다. 언젠가 요란한 홍보나 허세가 아니라 진짜 품질로 승부하는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 롤모델들을 존경합니다. 젠슨 황의 끈기, 리사 수의 회생을 이끈 리더십, 기예르모 라우치의 개척 정신에서 큰 영감을 얻습니다.
저는 과학과 기술의 메디치가 되고 싶습니다. 메디치는 비극적인 흑사병 이후 다시 태동하는 희망에 맞춰 뛰어난 사람들을 후원하며 예술 산업을 [개부심]{르네상스는 평화와 번영이 아니라 잿더미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역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입니다.}했습니다. 뛰어난 이들을 움직여 더 나은 미래를 빚어낼 수 있다는 그 가치에 크게 울림을 받았고, 저도 그런 사람들 틈에서 함께 미래를 빚고 싶어졌습니다. 현대에서 메디치 가문에 가장 가까운 형태는 건실한 기업이라고 믿습니다. 제 공상을 현실로 옮기고, 그 길을 직접 닦으며, 사람들이 새로운 모험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결국 가장 아름다운 미래는 지금의 고통에서 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