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와 생존 편향 (19誠鉉)
2019-10-13의 에세이. 당시 막 일어난 위워크의 대표 아담 뉴먼의 해고를 보며 많은 고민을 했다. 위워크는 스타트업 골드러시에서 청바지를 판매하던, 즉 모두에게 꿈을 파는 회사였다. 위워크의 시장 타격을 보며 나는 2019년 스타트업과 IT 업계가 엄청난 버블에 휩싸였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붕괴가 머지 않았음을 느꼈다. 물론 2020년에 예상치 못한 양적 완화가 시작되었지만... 그 버블의 핵심 원동력은 허황된 꿈과 비전과 자극적인 스토리, 성공 신화들이었다. 나는 한때 맹목적으로 스타트업을 꿈꿔왔지만 창업을 원하는 것이 아닌 창업의 부산물(돈, 명예, 영향력, 성공 신화)을 원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글은 그 고리를 깨어내고 나의 우상을 파괴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어릴 적부터 잡스에 대한 막연한 팬심에 출판된 거의 모든 책과 인터넷 자료를 보았다. 마치 사생 팬이 최애의 정보를 낱낱이 꿰고 있는 것처럼 많은 디테일을 파헤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잡스의 성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잡스는 성격도 고약했으며 리더십도 부족했다. 과대망상도 있었으며 자신의 고집이 강박증 수준으로 심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성공했으며 사람들은 그를 (아직까지) 21세기 최고의 혁신가로 칭송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착하고 얌전한 모범생이 되도록 교육받았다. 여전히 작은 규칙마저도 깨뜨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친구들은 뭐가 그리 소심하냐라고 나를 나무랄 때가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너네 그러다가 걸리면 뒷감당할 자신 있냐?**라고 되물었다. 나는 무모한 사람이 되기 싫었다. 자기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멍청한 행위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모하고 오만한 망상가
하지만 잡스는 나와 같지 않았다. 잡스는 무모했다. 대학을 중퇴하고 애플을 무작정 시작할 때, 워즈니악이 없었다면 잡스는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 머스크, 게이츠, 저커버그는 대학 수업이 무의미하다고 느껴 중퇴했으며 창업 초반에 제품을 자신들이 손수 코딩할 정도의 능력이 되었다. 하지만 잡스는 단 한 줄의 코드도 쓸 줄 몰랐다. 절대적으로 실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무작정 대 학을 떠났다.
또한 잡스는 이상한 고집이 있었다. 애플 초기에 **모니터와 키보드. 딱 이 2개 꽂을 포트만 남겨.**라고 했다가 워즈니악이 노발대발하여 겨우 포트 삭제를 면했다. 1980년대에 연결 포트가 전혀 없다고 상상해 보라. 이런 워즈니악의 방어가 항상 성공한 것도 아니다. 잡스는 컴퓨터를 냉각시키는 팬이 없어야 한다고 믿었다. 결국 애플 3에서 기어코 팬을 없애고 말았고, 이 때문에 치명적인 과열 문제와 성능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대성공한 애플 2에 비해 애플 3는 시장에서 대 참패하게 된다. 이때 컴퓨터 시장 주도권이 윈도 계열의 IBM에 넘어갔다. 결국 잡스의 강박이 시장을 주도할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때 애플 3까지 성공했다면 애플은 컴퓨터의 절대 강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애플 주주들 사이 대화를 상상해 보자. 잡스는 실력이 없고 성격도 안 좋은 몽상가이다. 창업자가 기술적 배경 지식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상한 고집만 부리다가 시장에서 크게 실패했다. 동시에 성격도 좋지 않으며 주변 인물도 배려하지 않는다. 물론 현재의 우리야 마지막 결과를 알고 있으니까 잡스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이지 당시 모든 상황은 병들어가는 기업의 주범으로 잡스를 지목하고 있었다.
시대를 앞서 생각했으니 성공한 것 아니겠어?
그렇다면 누군가는 **그래도 시대를 앞서 생각했으니 성공한 것 아니겠어?**라고 물을 것이다. 그럼 이 이야기를 들어보라. 우여곡절 끝에 스컬리가 애플의 CEO가 되었다. 스컬리는 굉장히 계산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스컬리는 코카콜라를 다닐 때부터 실력적으로 검증된 경영의 귀재였다. 그는 CEO가 되자마자 오만했던 창업자의 뒷정리를 시작했다. 제품 라인업을 규격화했고, 정돈되지 않았던 개발 부서들을 간결하게 개편해서 효율을 향상시킨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애플은 흑자 전환에 성공한다. 그리고 스컬리는 곧 신제품 개발을 지휘하기 시작한다.
스컬리도 시대를 앞서 생각했다. 그는 지식 탐색기라는 것을 원했다. 지식 탐색기는 거대한 네트워크 데이터베이스에 하이퍼텍스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으며 정보를 검색하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기기였다. 현대 언어로 조금 풀어 설명하면 인터넷에 웹으로 접근할 수 있으며 검색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기기였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구 사항이 붙었다. 지식 탐색기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있어야 하고, 선명한 해상도의 큰 컬러 화면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글뿐만 아니라 사진과 동영상을 표현하고, 고음질의 음악 을 재생하거나 음성 인식을 해야 했었다. 결국 스컬리는 잡스보다 한참 먼저 현대적인 스마트폰을 기획했다. 결국 새로운 애플의 CEO는 경영 실력도 되었으며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도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기회가 따라주지 않았다. 시장에서 너무 빨랐던 탓이다. 스컬리의 몰락에 대해서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일단 잡스가 시대를 앞서 생각했다는 이유로 성공한 것은 절대 아니다.
행운아의 생존 편향
궁극적으로 잡스는 무모하면서도 우연에 우연이 겹쳐 성공한 사람이다. 하필 워즈니악이 친구였기에 애플을 시작할 수 있었고, 하필 제록스에서 만든 그래픽 시스템을 우연히 봤기에 초창기 맥을 만들 수 있었다. 하필 잡스가 회사에서 복귀할 때쯤 아이팟을 위한 기술적 기반이 마련되었고, 하필 휴대전화를 가지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바스 오딩이라는 천재적인 디자이너가 관성 스크롤을 고안해서 잡스를 보여줬기에 아이폰을 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애플의 성공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것들에는 잡스가 한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 중심에서 균형을 잡는 게 CEO의 역할이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쯤 되면 내 요점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잡스가 성공했던 것에는 행운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완성된다.
영웅을 바라는 대중 심리
세상은 멍청하고 무모한 사람을 좋아한다. 이야기가 자극적이기에 그럴 것이다. 열심히 살아서 탄탄대로를 걸어온 사람이 무엇이 그리 흥미로운가.
더 자극적인 이야기. 더 자극적인 인물. 더 자극적인 인간상. 그리고 더 자극적인 성공.
사람들이 새로운 혁신가를 주창하는 심리는 복싱장에서 더 강하게 상대방을 패라고 소리 지르는 수많은 관중과 비슷한 심리일 것이다. 이를 포르노화된다고 표현하더라. 자극적인 매체를 계속 접할수록 우리의 기대치는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지면서 비현실적인 판타지를 가지게 된다는 것. 잡스와 그의 성공담은 우리에게 포르노처럼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행운아의 포르노.
결론
다음 잡스는 분명히 도래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음 잡스의 능력 탓도 아닐 것이고 다음 잡스의 혁신적 발상 때문도 아닐 것이다. 그저 세상을 돌리는 알고리즘 신이 우연히 그 사람을 간택하여 그 기회와 행운을 하사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지구는 그 사람을 찾기 위해 매초 새로 태어나는 4명의 복권을 끊임없이 긁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내가 다음 잡스가 될 것이라는 불합리한 기대를 하지 않을 것이다. 스타트업 생존 편향에 빠져 대학을 뛰쳐나와 스타트업을 차린 후 크게 실패하여 수 억 원의 빚을 가지게 된 99%는 무시한 채, 기적적으로 대성공한 1%의 이야기만 듣고 내 미래를 도박에 걸지도 않을 것이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기술을 무시하지도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현실을 직시할 것이다. 이제는 행운아의 생존 편향을 끊어낼 것이다.
만용과 소신은 한 장 차이이다. 성공하는 순간 무모함은 신뢰와 믿음의 나침판이 되는 것이고 실패하는 순간 오만함과 과신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내 복권을 긁어볼 생각이 없다.
나는 잡스라기보단 워즈니악이고 스컬리이다. 나는 어찌 보면 소신이 정말이지 하나도 없다. 나의 결정을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을 매 순간 바꾼다. 하지만 다르게 얘기하면 무모하지 않은 것이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수지 타산을 따져보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라는 책과 잡스의 수많은 기록들을 독파하며 내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길을 찾았다. 그저 알고리즘 신의 간택을 받길 바라면서 우연한 잡스가 되길 기도하고 내 복권을 긁지 않겠다. 언론과 미디어에서 전하는 극소수의 성공담만 듣고 나의 미래를 미화하지 않겠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잡스처럼 세상이 추앙하는 사람도 아니고 행운아도 아니다. 철저하게 실력이 겸비된 기술자들이다.
물론 또 다른 잡스가 세간의 관심을 가져갈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추앙을 받으려고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방구석에 앉아 혼자만 알더라도 무슨 상관이 있는가. 당신은 세상을 바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