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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광봉 (14誠鉉)

때는 2014년, 중학교 2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2학년 하면 담임선생님부터 빼놓을 수 없다. 굉장히 독특하시면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으로, 학생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면서 (가령, 같이 롤을 플레이하신다던가) 스마트폰을 프로젝터에 연결해서 같이 유튜브를 보신다던가 등 2014년으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선생님이셨다. 특히 나랑 깊은 이야기를 종종 나눴었고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좀 민폐스러운 실수들도 많이 했었지만 기분 나쁘지 않게 웃고 좋게좋게 넘어가는 법을 알려주신 선생님이셨다.

특히 이런저런 학교 행사를 기획하고 추억을 만들어주시기 위한 노력을 엄청나게 해주셨다. 학생들끼리 이런저런 글을 올릴 수 있는 밴드 그룹도 만들어주셨고, 학교에서 다같이 영화보는 밤을 가지기도 했으며 영화보는 밤에 다같이 상영하도록 각자 UCC를 만들기도 했고 물총싸움 (14誠鉉)을 하고 삼겹살을 구워먹기도 했다. 장태산 MT도 갔었다... 당시에는 내가 반장을 할 시기였는데, 가장 큰 이유가 내가 반장 연설을 할 때 비슷한 맥락으로 추억여행을 제안했는데, 그 공약에 맞춰서 "그럼 여학생들이랑 캠핑 가서 놀면 되겠고만!"이라는 추임새를 넣어주셔서 그랬다. 아무튼 그때 선물해주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전집은 아직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감사하게 가지고 있다.

그런 학교 생활을 하면서 겨울에 있을 행사를 다같이 기획하고 있었다. 겨울에는 매년 축제 행사가 있었는데, 축제 행사에 맞추어서 항상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셨다. 예를 들어 그 전 해인 2013년에는 반 전체가 군무를 했었다. 2014년에는 조금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고 이야기하다 결론적으로 축제장 앞에서 시장을 열어보자는 결론에 이른다.

당시에 여러 아이디어가 있었다. 몇 개 조로 나누어 다양한 물건을 팔기로 했고, 코코아를 파는 팀도 있었고, 컵라면을 팔던 팀도 있었다.

나는 '야광봉'을 팔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특히 그 전 해에 방송부를 하면서 축제 비하인드 씬을 많이 봤었는데, 야광봉을 쓰는 사람들을 보고 꽤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대 위로 올라가서 핀 조명을 관리하면서 축제 1부와 2부 하루종일 고생했었다 (당시에는 학생이 많아서 2부로 나누어 진행했었다). 그 때 이야기는 나중에 풀어보자...

어쨌든 시장 조사를 해본 결과 도매로 구매할 경우 1개 당 약 37원 쯤에 구할 수 있었고, 축제 당일에는 몇백원 수준에는 팔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충 계산해보니 몇십만원 수준의 매출은 올릴 수 있겠다는 계산 결과가 나왔다.

팀 이름은 Salermander였다. 말장난을 좋아하는 것은 그때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아직도 코코아 팔던 팀에게 당시 유행했던 인터스텔라를 연결지어 "윈터스텔라"라고 이름짓자고 제안한 기억이 난다.

팀 Salermander입니다.
탄방중학교 예술제에서 야광봉 (팔찌) 를 팔 계획입니다. 이 글을 공유하시거나 단체주문하시면 다음과 같은 혜택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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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성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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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렇게 생애 첫 도떼기 장사를 시작해봤다. 당연하겠지만 결과는 대실패였다.

  1. 물류의 중요성 — 37원짜리 야광봉을 수천개 주문했는데, 공장에서 배송이 출발하던 구조였어서 도착 예정 날짜가 축제 다음으로 미뤄졌다. 그래서 축제 전 날에 부랴부랴 뛰어다니며 재고를 구했고, 그 때문에 원가가 200원 수준까지 치솟게 됐다. 이 때문에 가격을 낮추는데 무리가 있어서...
  2. 과한 가격, 그리고 이미지 타격 — 처음에는 천원에 2개를 주는 방식으로 개당 500원에 판매했는데,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37원에 버젓이 나오는데 고까웠을거다. 옆반에 머리가 빠릿했던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서울대 물리학과에 다닌다) 나를 보며 완전 사기꾼이라고 놀렸었다. 그리고 그게 소문이 나면서 "아 뭐야, 안 살래" 같은 반응을 들었다.
  3. 패닉 셀 — 축제 시작 시간이 가까워져 가면서 공연장 외부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팀은 가격을 점점 내리면서 패닉셀을 시작했다. 천원에 5개, 그러다 천원에 10개...

결국엔 본전도 못 뽑고 야광봉만 300개 넘게 남은 채로 생애 첫 장사는 그렇게 끝났다. 경영의 어려움을 배운 순간들이었다.

그래도 공연장에서 수백명의 학생들이 동시에 야광봉을 흔들며 응원하는 그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