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켜면 바이올레이션
2016-04-01에 게재된 재학생일기이다.
상벌점 제도는 어느 학교에나 있는 제도입니다. 민족사관고등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은 민족사관고등학교의 상벌점 제도에 대해서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민족사관고등학교는 기숙학교라는 특성 상 매우 엄격한 규칙을 적용합니다.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덕분에 학생들이 큰 사고 없이 잘 생활하고 있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민족사관고등학교 내에서는 학생들이 지켜야하는 규칙들과, 그 규칙을 어겼을 때 적용되는 바이올레이션이 있습니다. 바이올레이션은, 영어 Violation을 우리말로 표기한 것으로 규칙 위반을 의미합니다.
상벌점 제도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예시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2016년에 입학한 21기 예비 신입생들 중에서는 3주 만에 벌점 20점을 받은 학생이 있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이 학생이 중학교 동안은 벌점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일단 여기에서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의 벌점 기준이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지요. 그렇다면 그 학생이 어떤 항목들로 벌점을 받았는지 알아볼까요?
첫 번째로, 그 학생은 컴퓨터 바이올레이션 항목에서 벌점 5점을 받았습니다. 컴퓨터 바이올레이션은 컴퓨터를 침대 위로 가지고 올라가거나, 컴퓨터로 게임을 하거나 학업과는 무관한 영상물을 보았을 때 주어지는 벌점입니다. 학생들이 흔히 컴바라고 줄여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컴퓨터 바이올레이션은 학생들이 가장 걸리기 싫어하는 바이올레이션 중 하나인데, 그 이유는 바로 이 항목으로 적발될 경우 컴퓨터를 한 달 동안 제출하고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두 번째로 받은 벌점은 신성 불참이라는 항목으로 받은 벌점입니다. 민족사관고등학교에는 밤 9시에 혼정이라는 것을 진행합니다. 혼정은 사전적으로 부모님께서 편안히 주무실 수 있도록 잠자리를 살펴드리는 일을 의미합니다. 혼정 시간에는 남학생 전체와 여학생 전체가 각각 따로 모여, 사감 선생님의 공지사항을 듣고 동아리와 학교 일정 등을 공지합니다. 또 주말에는 아침 7시부터 8시까지, 점심 12시부터 1시까지, 신성을 합니다. 신성을 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기숙학교 특성상 기본적으로 주말에 학생들이 학교에 어떤 보고도 없이 외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과 또 신성 시간에 맞춰 식사를 하게끔 만드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성이 왜 식사를 하게 도와 주냐고요? 바로 기숙사 12층 식당에서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는 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랍니다. 신성하는 김에 식사를 하라는 의미인 것이지요. 그러나 주말에 늦잠을 자거나 식사를 하고 신성을 하는 것을 깜빡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에, 신성 불참으로 벌점을 쉽게 받기도 합니다.
세 번째로는 통금 (통행금지) 위반으로 8점을 받았습니다. 기숙학교인 민족사관고등학교는 밤 12시 이후에는 재학생들의 통행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고, 이에 대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벌점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자습시간이 밤 11시 50분에 끝나는데, 이 때 잠깐 다른 방에 볼 일을 보러갔다가 12시가 넘어버리면 통금을 위반한 것이 됩니다. 사감 선생님께서 매일 순찰을 도시는 것은 아니므로 학생들이 종종 어기곤 하는데요. 그래서 순찰을 한번 도시면 엄청난 수의 학생들이 벌점을 받는 진풍경을 보게 됩니다. 더불어 같은 방 학생이 통금을 위반했고, 다른 학생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 학생을 제지하지 않은 경우 통금 방조라는 항목으로 벌점을 함께 받게 됩니다. 이런 경우는 정말 많은 학생들이 한 번에 벌점을 받게 됩니다. 한 학생이 통금을 위반해서 그 학생이 방문한 방 학생들과 그 학생이 살고 있는 방 학생들 총 11명이 동시에 통금 방조로 벌점을 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마지막은, 지시 불이행입니다. 선생님들께서 지시하신 것을 이행하지 않았거나, 하지 말라고 지시하신 것을 했을 때, 이 벌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선생님들의 지시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가장 애매한 만큼 논란도 가장 많은 벌점 항목 중 하나입니다.
이 외에도 청소 검사에서 적발된 학생들이 받는 클리닝 바이올레이션과 큰 소리를 내면 받는 고성방가 등이 있습니다. 물론 기숙사 건물 내에도 악기 연주 연습을 할 수 있는 공동 강의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강의실이 아닌 기숙사 방 같은 곳에서는 원칙적으로 큰 소리를 내면 안 된답니다. 한마디로, 방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바이올레이션이 될 수 있는 것이죠! 한 방에서 3명, 한 호에서 6명이 사는 기숙사 구조상 다른 룸메들에 대한 배려와 예의의 차원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바이올레이션에 걸리게 되면 목요일 저녁 7시에 학생 법정으로 가서 벌점을 선고받게 됩니다. 이 때 바이올레이션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최후변론서를 제출할 수 있고, 이를 사법위원회에서 심사를 한 뒤 판결을 합니다. 그 판결에 따라 바이올레이션이 기각되거나, 감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벌점을 받는다면, 학생들이 가끔 너무 과도하게 벌점을 주는 것이 아니냐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벌점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컴퓨터 바이올레이션 벌점은 학생들이 컴퓨터 중독이 되는 것을 방지하고 학습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있고, 통행금지는 발생할 수 있는 만일의 사고를 방지합니다. 이렇듯 각자의 벌점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신입생으로 들어오게 되면, 일단 2월에는 벌점을 받더라도 리셋이 됩니다. 그 당시에는 재학생 신분이 아닌 예비 신입생 신분이기 때문에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글을 읽는 학생들에게 벌점 리셋을 너무 믿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벌점은 리셋 되지만 생활 습관은 리셋 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