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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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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헤니에서 1917년 순한글 출판본을 찾았다.

인용

세월이 물과 같아서 나로 하여금 조금도 미룰 수 없게 한다. 내가 이 직무를 폐기한다면 사천년 문명구국이 또한 발해가 망하자 역사가 망하는 것과 같은 유가 되지 않겠는가. 비록 세상 사람들이 자격없는 사람이 썼다고 나를 꾸짖는다 할지라도 또한 어찌 사양하여 그만 두겠는가. 그러나 사천년 역사 전부는 고루하고 쇠둔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또 단시일내에 집필할 수도 없는 것이니, 이것은 할 수 있는 이에게 기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 목격한 최근의 역사는 힘씨 불만한 일일 것이 다. 이에 갑자년(1864)부터 신해년(1911)에 이르기까지 3편 114장을 지어 통사라 이름하니 감히 정사를 자처하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우리 동포들이 국혼이 담겨져 있는 것임을 인정하여 버리거나 내던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국교·국학·국어·국문·국사는 혼에 속하고, 전곡·졸승·성지·함선·기계는 백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혼이 있는 자는 백에 따라 죽거나 살지 않으므로, 국교와 국사가 망하지 않으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오호라, 지금의 한국은 이미 백은 죽었다고 할 수 있으나 이른바 혼이라는 것은 남아 있는가, 아니면 이 미 없어져 버렸는가?

나는 단군이 개국한 지 4190년 만에 황해도 해변에서 태어났지만, 이미 국권이 실추되어 가고 있으므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늙어 백발이 황폐하고 관직에서 물러나게 된 지금, 국가가 멸망의 위기에 처해 이제는 조상에게 제사조차 지낼 수 없게 되었다. 큰 죄를 지은 내가 어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 목격했던 근대사는 쓸 수 있을 것 같아 갑자년(1864)에서부터 신해년(1911)까지 의 역사를 총 3편 114장으로 나누어 서술해 이를 통사라고 했지만 감히 정사로 자리 잡을 수 없다. 다만 우리 동포들이 국혼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 절대로 이를 저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후기

엄청난 지식인이며 뛰어난 통찰이다. 역동적인 한국 근현대사의 몸부림을 서서히 하지만 고약하게 포착하였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마치 추두부와 같다. 망국의 징조는 모든 곳에 있었다. 19세기 중반부터 솥은 달아오르기 시작했으며, 미꾸라지들로 가득한 친청파, 친일파, 친러파 그리고 그 사이의 줏대 없는 정부는 조금이라도 나아보이는 두부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마지막에 이르러 조정의 대신들은 결국 조금이라도 시원해보이는 일본을 파고들었다. 그 안에서 익어죽을 것을 알지 못한 채...

저자는 그 시작을 대원군의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나는 그보다 조선의 구조적 결함을 망국의 시작으로 본다. 사농공상에서 비롯하여 고려 시대 쌓아둔 상공업의 완전한 붕괴와 기술의 멸시가 그것이다...

잘못한 것은 우리가 고작 '미꾸라지'로 남아있도록 한 것이다. 자랑스러운 기개와 별개로 한민족은 치욕스럽게 미개한 거버넌스를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지능의 복리를 누리지 못하고, 반만년 역사에도 과학과 기술은 제자리걸음을 하였다. 중세부재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을 논할 것도 없이, 충분히 발전할 수 있었던 시장경제와 통치구조 개혁을 우리끼리 끓어넘치는 용광로처럼 끊임없는 500년의 고군분투로만 이어진 것이다. 프랑스 혁명과 같은 자정 작용을 끊임없이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우리의 경쟁력이 부족했다는 점뿐이다. 특히 당시 정부의 치욕스러운 무능함과 변덕스러운 외세의 의존은 다음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나는 서울에 있다가 청국에 원병을 요청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당국자에게 동학교도는 오합지졸에 불과해 관군들이 힘써 소탕하면 진정시킬 수 있을 텐데 어찌 중국에 원병을 청했다는 말인가! 우리나라에서 구구하게 일어나는 내란을 스스로 진압하지 못하고, 외국에게 이런 위급에서 구해 달라고 하는 것은 국가의 치욕이 아닌가? 또한 갑신년(1884)의 천진조약에 명시된 바에 따라 만약 청국에서 파병하게 되면 일본 또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로 말미 암아 양국 군대를 불러들이게 되면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인데, 우리나라가 어찌 무사할 수 있겠는가? 라고 물으니, 그는 대답을 못했다. 결국 내 말은 적중했다.

민족주의사학의 대표 주자를 읽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식민지 시대는 양날의 검을 모두 갖추고 있다. 조선의 구시대적 폐단을 강제로 개혁시킨 동시에 문화와 산업마저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강제로 모든 변화가 일어난 덕분에 우리는 앞서 말한 자정 작용을 불러올 기회를 완전히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자정 작용이 없었기 때문에 현세에까지 수많은 잔재와 구시대적 사고관들이 남아있다. 결국 자기반성을 해야할 뿐이다.

내 생각에 우리 민족은 두 가지 병폐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연약하고 완만해 용기 있게 분투하는 기개가 없어 모든 사업이 위축되고, 산을 옮길 계획을 감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경술하고 조급해, 견실한 역량도 없이 헛되이 허영만 꿈꾸며 해의 그림자를 쫓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병을 고치지 못하면 앞날의 사업에 희망이 없을 것이니 우리 동포가 반성하고 힘써야 할 곳을 알기를 바라는 바다.

태백광노 박은식이 아산 정주영을 보았다면 무어라 말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