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역사학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파운데이션에서 수학자 해리 셀던은, 전지전능한 은하 제국이 곧 30,000년 동안 지속될 암흑기에 돌입하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하지만 셀던은 동시에 아주 정밀하게 설계한 인위적 자극이 역사의 궤적을 바꿀 수 있음을 알아차린다. 셀던은 파운데이션이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인류의 지식과 문화를 총망라하여 계몽을 향한 새 시대를 이루어갈 수 있도록 준비한다. 셀던 계획의 핵심 개념은 심리역사학인데, 전 인류의 심리를 과학과 수학을 이용해 모델링하면 인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리 셀던 이전에도 수학자와 과학자들이 심리역사학의 개념을 예측하기는 했지만 인류의 카오스적 행동 패턴 때문에 이를 온전하게 완성하지 못했다. 해리 셀던은 몇 가지 전제 조건을 바탕으로 이 무작위성을 제거할 수 있다는 연구를 완성했다. 그 전제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 연구할 인구가 크기. 심리역사학을 적용하기 위해선 연구 대상의 크기가 일정 수준을 넘어야 한다. 집단이 크면 클수록 예측이 정확해진다고 본다.
- 정보의 제한. 심리역사학은 심리역사학을 알고 있는 대중을 예측하 지 못한다. 자기 사회의 미래가 정확하게 예측되고 있다면 사람들은 행동을 바꾸기 때문. 때문에 작중에서도 굉장히 극소수의 지식인들만 심리역사학의 존재를 알고 있고, 심리역사학은 이미 사장되어 실패한 학문처럼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다. 마치 연금술처럼.
- 동질성. 심리역사학은 사람들이 대체로 비슷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비슷한 가치관, 비슷한 믿음, 그리고 비슷한 행동 요소를 포함한다. 차기 파운데이션 시리즈에서는 이 동질성을 벗어나는 뮬이라는 독심술사가 나타나 셀던 계획을 파괴한다.
- 외세의 부재. 심리역사학은 오직 인류만이 역사의 흐름을 결정한다고 판단한다. 심리역사학은 천재지변이나 외계 생물체의 확률을 계산하지 않는다.
- 과학 발전의 속도. 심리역사학은 과학 발전이 역사의 흐름보다 빨라질 경우 특이점이 도래할 수 있어 역사의 예측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이 뿐만이 아니라 셀던은 심리역사학의 관측 행위가 관측 대상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 또한 알아냈다 (양자물리학의 코펜하겐 효과와 비슷하게). 이를 위해 셀던은 두 개의 분리된 파운데이션을 구축해서 상호 보완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이는 작중 제2파운데이션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심리역사학의 핵심 개념들이 경제학과 사회학에 영향을 준 사실도 흥미롭다. 예를 들어,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정치경제적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경제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생각하는 것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2/dec/04/paul-krugman-asimov-economics).
심리역사학은 가상의 학문이지만, 나는 인류가 멸망의 초입부에 도달했으며 끝없는 암흑기를 앞두고 있다는 셀던의 예측이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은 은근한 불쾌함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암흑기에서 우리의 파운데이션을 건설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은하에서 지성의 빛을 어떻게 보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