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A와 CIA, 냉전기 현대미술을 미국 자유의 증거로 해외에 내보내다
- 미 국무부와 CIA는 냉전기에 미국 현대미술 전시를 해외에서 지원했고, 기사에서는 추상표현주의가 나치와 소련의 억압에 맞서는 자유·개인주의의 표상으로 쓰였다고 설명함
- 1948년부터 1949년까지 MoMA 사무총장이던 토머스 W. 브레이든은 1950년 CIA에 들어가 문화 활동을 맡았고, 1967년 글에서 미국 미술이 연설 수백 번보다 더 큰 미국의 명성을 얻었다고 회고함
- MoMA 회장이던 넬슨 록펠러는 1940년 루스벨트 행정부의 미주 담당 조정관에 임명됐으며, MoMA는 2차대전 중 정부 문화물 계약 38건과 중남미 순회 미국 회화전 19회를 수행함
- 1941년 MoMA는 존 헤이 휘트니 체제에서 '국방의 무기'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미주 21개 공화국의 예술·문화 교류와 중남미 순회 미술 전시로 범미주의를 추진함
- 전쟁 뒤 록펠러의 미주 담당 조직 인력이 MoMA 국제 전시를 맡았고, 국제 프로그램 책임자 포터 맥크레이는 1951년 마셜 플랜 업무를 위해 휴직함
Hacker News opinions
사이옵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 건 아니라고 봄. 국가가 예술 운동의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비밀 자금을 줘서 증폭시키는 일이 동기와 방식에 따라서는 허용될 수도 있음. 지금 CIA라면 누구와 무엇에 돈을 댈지 궁금함.
'자유인의 마음과 의지를 교육하고 고양한다'는 말은 당시에도 공산주의와 싸우자는 구호였을 뿐이라고 생각함. 소련 유대인 이주 운동도 인도주의보다 소련의 인적 자본을 빼내려는 계산이 컸다고 봄.
이건 CIA가 현대미술을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보다는 냉전기에 미국 문화를 해외로 퍼뜨린 이야기 같음. 르코르뷔지에와 필립 존슨의 나치 동조 이력이 있는 모더니즘 건축 쪽이 더 불편함.
최근 미국에서 고전 사실주의 조각을 만들기 어려운 이유를 다룬 Decoder Ring 에피소드를 들었는데, 전후 서구에서 사실주의가 밀려난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음.
현대미술 사이옵보다는 자금 세탁 작전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임.
나이 들수록 유기적으로 생긴 운동보다 누군가가 기획하고 조종한 운동이 훨씬 많다는 생각이 듦.
운동은 지도자가 방향을 틀 수는 있어도, 바탕 조건이 있어야 생긴다고 봄. 'CIA가 현대미술을 만들었다'는 식의 설명은 영향력 있는 한 요소를 전체 원인으로 과장하는 것 같음.
사람이 권력과 영향력을 써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려 한다는 뜻이라면 당연한 얘기임. 다만 세상의 복잡함과 불확실성을 견디기 싫어서 모든 일을 통제와 권력으로 설명하려는 경향도 경계해야 함.
요즘은 AI에 대한 반작용인지 고전적 사실주의만 보고 싶음. 윈도우 11 기본 배경 같은 추상 큐브는 싫고 르네상스 회화가 배경이면 좋겠음.
AI는 복잡한 고전 회화와 사실주의를 단순한 현대 파라메트릭 이미지보다 더 잘 흉내 내는 듯해서 묘한 역설임.
현대미술의 큐브류는 렘브란트 옆에 놓으면 저비용에 지루하게 느껴짐. 군중이 기대하는 감정을 느끼려고 억지로 감상할 이유가 없다고 봄.
제목만큼 CIA 이야기가 강하지는 않았음. 현대미술은 CIA보다 먼저 있었고 CIA는 해외에 밀어 미국이 사회주의 예술가와 그 예술을 용인할 만큼 자유롭다고 보이게 했다는 정도임.
당시에는 낯선 예술을 지원하는 일이 실제로 미국의 표현의 자유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을 것임. CIA보다 로커펠러와 그 주변 엘리트 기관이 이 일을 가능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더 흥미로움.
모든 나라가 소프트파워를 위해 문화를 홍보함. 한국 정부의 계획 없이 미국에서 K-pop 인기가 저절로 생겼다고 보긴 어려움. 소련에는 '우리 예술가는 뭘 만드는지 우리도 모르지만 지원한다'고 과시한 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