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생활과 방 배정
2016-11-11에 게재된 재학생일기이다.
민족사관고등학교(이하 민사고) 내에는 전교생이라고 해도 채 500명이 안 되는 학생이 있을 뿐입니다. 고등학교치고 그리 많지 않은 숫자의 학생들이 다양한 관계를 경험할 수 있는 이유는, 제가 보기엔 단연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생활의 모든 연결고리는 수업을 통한 학교 생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수업을 위한 학교생활은 단지 하루 중 8시간 정도 입니다. 수업을 통해서는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교류하기도 어려운 시간이고, 유의미한 사회 활동을 한다고 보기 어렵지요. 그러나 저녁 무렵, 어둠이 내리고 나면 우리는 또 다른 학교생활을 직면하게 됩니다. 민족사관고등학교 기숙사인 덕고관은 또 다른 배움의 장소입니다. 학문적인 공부를 하는 다산관과 충무관 등 (일반적으로 수업이 이루어지는 민족사관고등학교의 교육관들의 명칭) 과는 달리 그보다는 조금 다른, 자기 주도적인 시간 관리와 다양한 실생활을 통한 배움을 얻게 됩니다.
덕고관은 민족사관고등학교의 기숙사 명칭입니다. 덕고관은 기숙사이기 때문에 생활과 관련된 각종 필수 시설들이 갖춰져 있으며,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은 1층부터 10층까지입니다. 학년별로 사용하는 층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층마다 지도교사 한 두 분이 거주하고 계시며, 남사감 선생님과 여사감 선생님이 전반적인 업무를 맡으십니다. 11층에는 면학실이 자리하고 있어 학생들은 방과후 자기 개인적인 시간을 이곳에서 자습하며 보낼 수 있습니다. 덕고관의 맨 꼭대기 층인 12층에는 식당이 위치해 있으며 이곳은 식사 외에도 자습할 공간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식당에서는 학생들끼리 자유롭게 토론하며 공부할 수 있고, 절대정숙을 요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면학실과는 다른 자습 장소로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당연히 기숙사 자기 방에서 자습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럼, 학생들 생활을 위한 기숙사 내 시설을 잠깐 소개해드릴까요? 정수기가 매 층마다 자리하고 있고, 지하에는 세탁실도 있습니다. 모든 호마다 샤워실, 화장실이 있고, 모든 방마다 무선 인터넷 공유기도 제공됩니다. 이 외에도 덕고관 바로 옆에는 풋살장도 있어 저녁 식사 후 자습이 시간되기 전 쉬는 시간을 이용해 학생들이 운동을 할 수 있기도 합니다.
어떠신가요? 12층 건물인 기숙사 덕고관에서 움직이는 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그럼 이어지는 다음 편에서는 이런 기숙사 생활에서 학생들에게 어쩌면 가장 큰 관심거리이자 중요 사안인 방 배정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하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2016-11-15에 게재된 재학생일기이다.
1편에서 말했듯이 오늘은 기숙사 방 배정 과정과 이사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학생들은 개인마다 친한 친구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생활 패턴이나 가치관이 달라서 함께 방을 사용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는 친구도 있을 겁니다. 이런 단순하지만 그러나 그냥 무시할 수 없는 관계를 어느 정도 존중하는 방 배정 방법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일명 블랙 리스트와 화이트 리스트라고 통용되기도 하는데요, 아마 설명이 없어도 눈치채셨을 겁니다. 다음 학기 동안 방을 함께 쓰는 것을 피하고 싶은 사람과 다음 학기 동안 함께 방을 쓰고 싶은 사람을 의미하는 겁니다. 두 리스트를 합쳐서 3명을 적을 수 있으며, 꽤 높은 확률로 반영됩니다. 덕분에 자신과 너무 다른 생활 패턴이나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을 피할 수도 있고, 함께 방을 쓰고 싶은 두 세 명이 모여 서로 화이트 리스트를 작성함으로써 같은 방으로 묶일 수도 있는 거죠. 또한 본받고 싶은 공부 방법이나 생활 태도를 갖고 있는 동료를 원하여 그 친구의 모습을 옆에서 보며 한 학기 동안 자기 발전을 위한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방 배정이 결정되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기숙사 1층 엘리베이터와 12층 식당 엘리베이터 앞에 게시됩니다. 방 배정 발표가 있는 날은 누군가는 자신이 원하던 학생들과 되어 기뻐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화이트리스트가 깨져 실망을 하기도 합니다. 희비가 교차하는 가운데 학생들은 며칠 뒤 있을 방 이동을 준비합니다.
방 이동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죠. 한 학기 동안만 사용한 방인데도 뭐가 그리 많은 지 거의 4시간 넘게 꼬박 정리해야 겨우 옮길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옷장 안에 있던 작은 양말 한 켤레부터, 거대한 프린터까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짐을 전부 다 옮겨야 하니까 말이죠. 여러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기 때문에 층 사이를 이동하게 되면 한 번 움직이는 데 10분이 걸리기도 한답니다. 짐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1층에 사감 선생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상자를 이용하여 옮기기도 합니다. 학생들끼리 짐을 옮기는 속도가 맞지 않아 어느 방은 모두 빠지고 짐이 아무 것도 없는 반면 어떤 방은 갈 사람과 올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있기도 합니다. 짐을 빨리 정리하라고 재촉하는 학생, 왜 그렇게 빨리 왔냐고 조금만 쉬다 오라고 말하는 학생 등이 보입니다. 그런 광경들 중 유독 여유로운 학생도 있습니다. 같은 호 내에서, 혹은 같은 방 내에서 방을 옮기게 된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죠. 이런 경우에는 짐을 들고 옮길 일도 없고, 엘리베이터를 탈 일도, 짐을 힘들게 가지고 올라왔는데 전 주인이 짐을 다 빼지 않아 고생하는 일도 없는 행운아입니다.
그렇게 학생들이 짐을 다 옮기게 되면, 물리적인 이사는 다 끝난 것입니다. 간혹 분실물이 있어서 그것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면 그 자리에 다 시 가서 물건을 뒤질 일은 없을 겁니다. 이제 그 다음은 사회적, 정신적 이사 등을 해야 합니다. 청소 역할 분담을 다시 해야 하는 등, 같은 방, 같은 호에서 생활하게 되는 새로운 동료들과 적응해야 합니다. 또한 방을 옮기고 난 후 한동안은 방을 착각하는 무의식적 과정을 몇 번 거치고 난 후에야 정말 이사가 끝나게 되는 거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생활하는 민사고에서의 기숙사 생활. 부모님 품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여기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우리끼리 느끼고 배우게 되는 또 다른 생활과 교육이 분명 있습니다. 이러한 방 이동을 앞으로 몇 번 더 경험하게 되겠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부대낌 속에서 내가 어떻게 성장해나갈지 저도 제 자신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