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실리콘밸리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상한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은 흔치 않다는 점이다. 물론 이민자들은 석박 엘리트 코스가 많았지만 체류 문제 때문이라고 차치하고 본토 미국인들 중에서는 슈퍼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우리 팀에서 시니어 개발자 두 분은 부트 캠프에서 오셨지만 압도적인 개발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또 인사팀에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접객 능력을 살려 전업하신 분도 계신다. 그러니까, 한국 사회에서 일부 사람들이 무시하는 사람들에게서 엄청난 퍼포먼스가 창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그들은 좋은 일자리에서 공부되는 일을 하며 (일 = 공부였다) 초고속 성장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그들은 원서와 논문을 원문 그대로 이해할 수 있어 언어적 장벽이 없었고, 이직이 자유롭고 편견이 적은 사회에서 살다 보니 초고속 성장에 방해받는 요소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그런 기회가 적지 않았다. 노력을 1 하면 보상을 100 받는 사회. 재도전의 기회가 언제든 열려있는 사회. 노력할 맛이 나는 사회다.
그렇다면 미국에는 그런 건강한 육성적 일자리들이 왜 그렇게 많을까. 일단 인재 풀이 엄청나게 많은 것 같진 않았다. 어떤 회사에서든 태생부터 남다른 오펜하이머급 슈퍼브레인은 얼마 되지 않는 듯했다. 나머지는 모두 위와 같이 "육성된" 인재들인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건강한 경제라고 보았다. 공부는 원래 돈 받고 해야 맞는 것이다. 미국 기업이 강한 이유는 실력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일자리 흐름이 건강해서 그렇다. 성장형 일자리가 많은 것이다. 이직이 자유롭고 일손이 부족하여 모두가 압축 성장을 해야 하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원이 넘쳐야 하는 것이다. 즉 돈 받으면서 커리어 공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회사는 돈을 잘 벌 수 있다. 이는 회사가 뛰어나서 라기보다는 워낙 탄탄한 미국의 내수 경제와, 세계의 지력을 무한정 끌어다 쓰는 달러 패권에서 기반한다고 볼 수 있겠다. 더군다나 경제가 좋으면 사람들이 붙어 연구를 해야 할 분야가 엄청 많다. 경제가 좋으면 슈퍼마켓에서도 시장 전략과 리텐션, 소비자 분석을 전부 돌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연구를 위해 수많은 인재들이 달라붙어 많은 돈을 받으며 일하고 그렇게 성장해서 떠나고 또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다.
즉 돈의 흐름을 빠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긍지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편견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이 바뀌는 것에는 ① 진심 어린 ② 3년. 딱 이 2가지만 있으면 충분하다. 사람의 성장은 멈추지 않으며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더더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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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에서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사람보다 능력적으로는 더 뛰어난 한국 사람들도 많이 있다. 다만 그들의 능력이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즉, 순수한 기술력보다는 그 기술력이 세상에 어떻게 발현되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의 능력은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 한민족은 해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