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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사이트가 항상 사람을 멀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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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8에 게재된 재학생일기이다.

아무리 한 사람이 인간관계를 최대한 확장한다고 해도, 유의미할 정도의 친분을 가지고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는 한 인간의 삶 동안 200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들을 평생 친구라고 합니다. 자신이 소속된 사회가 크건 작건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의 영역이 있을 수 있고, 누군가는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작은 공동체에 자신의 평생 친구 200명이 전부 포함되지는 않는 법이죠. 인간은 다양한 면모가 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기숙사에서 살게 되면, 기숙사라는 작은 공동체에 평생 친구가 있을 수도 있고, 기숙사 외부에서 만나게 될 평생 친구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제가 느낀, 민족사관고등학교 (이하 민사고) 에서의 외부 친구 관계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굉장히 큰 중학교를 나왔습니다. 전교생이 2000명이 넘고, 교직원만 100명이 넘습니다. 하나의 소사회와도 같지요. 이러한 소사회의 범주에 들어가면 한 개인이 사회에 줄 수 있는 영향이 무의미할 정도로 작아집니다. 한 학년에 600명이 넘었기에 전교생의 이름을 다 알고 있기도 불가능했고, 매년 반이 바뀔 때마다 처음 보는 친구들이 대다수였습니다. 내가 아무리 날고뛰어도 어떤 중요한 직책의 이름 아래 활동하지 않는 이상 나의 영향을 받지 않는 친구는 언제나 존재하긴 한다는 뜻이죠. 내 영향력의 경계를 볼 수 있는 겁니다. 호수 한 쪽에 돌을 던져도, 갈수록 수면파가 점점 약해지며 결국 호수의 반대쪽에는 도달하지 않는 모습이라고나 할까요? 저의 중학교는 이런 호수와도 같았고, 저는 그런 삶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런 삶이 친구 관계를 더욱 가깝게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평생 친구하면 얼굴이 생각나는 친구들 몇 명도 만들었습니다.

민사고에 입학하고 나서 이 친구들과 얼굴을 볼 기회는 정말, 정말 적었습니다. 2주마다 주말에 한 번씩 귀가를 하더라도 부족한 잠을 채우느라, 다음 주에 있을 수행평가를 준비하느라 얼굴을 못 보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SNS를 통해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해도 간단한 연락이 다였죠. 한 번은 친구를 길에서 마주쳤는데 어찌나 어색하던지 인사를 제대로 꺼내지도 못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친구는 이러한 문제 때문에 굉장히 괴로워했습니다. 자신과 평생 제일 친할 것 같던 절친이 SNS에서마저 다른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고 웃고 있는 사진은 그 친구에게 꽤나 씁쓸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 친구가 스스로 좋게 마무리하긴 했지만, 만약 그 당시 제가 제 속마음을 말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러한 일들이 가슴 아픈 일이기도 하겠지만, 친구를 가둘 수는 없지 않겠냐고요. 우리가 여기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듯이, 그 친구에게도 얼굴 볼 친구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요. 아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친구가 나만 바라보길 바라는 이기심은 아닌지, 삐딱한 사랑은 아니냐고요. 다른 친구와 친하게 지낸다고 그게 네가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오히려 얼굴을 안 보다 보게 되니 더욱 반가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말입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언젠가 그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멀리 있는 친한 친구의 최대 장점은 바로 서로 싸울 일이 없다는 것이라고요.

사람들은 거리를 둔다는 것이, 사람 마음을 멀게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에서 조금 다른 현실을 보았습니다. 사람 사이에 거리가 생긴다는 것이 둘 사이의 소통을 줄이는 것은 맞습니다. 인간관계를 조급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마음이 식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그러나 오히려 이 거리가 서로에 대한 가치를 재평가하게 하고, 왜 소중한 친구인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정리하는 거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관계를 조금 더 원숙하게 만들어주는 거리라고 말입니다. 때로는 인간관계에도 숨통이 트여야죠. 민사고에서의 기숙사 생활은 제게 이런 경험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