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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5일 민족사관고등학교 교장 사임 사건

좋은 지도자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탈 없이 잘 운영한 사람. 탈이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 나는 항상 후자의 지지자였다. 학창 시절 호쾌한 소위 핵인싸 재질은 아니었음에도 당선이 되든 되지 않든 출마 가능한 선거에는 거의 대부분 출마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나의 공약들은 전부 개혁적인 쇄신책들이었고 低비용 高효율 高효과 정책에 집착하는 智略家 스타일이었다. 그 대부분은 말도 안되는 구태와 타성을 타파하는 것에 있었다. 물론 선거는 결국 인기 싸움이며 레거시와 싸우는 지루한 배틀은 별로 인기를 못 얻는다는 것을 몰랐지만.

어쨌든 나는 이런 나와 비슷한 사람을 한 차례 더 뵌 적이 있다. 2016년 민족사관고등학교로 새로 오신 교장 선생님이셨다.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촛불집회에 학생들의 참여를 만류하다 하루아침에 사임하신 교장 선생님으로 알려져 있겠지만 나는 그 분께서 알 수 없는 복잡함을 느꼈다.

한줄정리

민사고는 그 분을 포용하는데 실패함으로 인해 더 위대하고 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민족사관고등학교로 발전하는데 크게 실패를 하였다. 민족사관고등학교는 한낱 朝鮮고등학교였는가.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caution

野史이다. 모두의 관점은 다르며, 교장 선생님의 실책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그 분을 이해하고 포용하여 발전의 역량으로 삼지 못한 것은 민사고를 또 한번 후퇴시켰다.

구태 타파

교장 선생님은 지략가이었고 적극적으로 구태를 타파하시는 분이셨다.

  • 수면실. 일과 시간에도 사용할 수 있는 수면실을 처음으로 만드셨다. 이에는 인터뷰를 첨부한다.
  • 방문을 닫아도 좋다. 민사고에서 아주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것은 자습시간에 모든 방문을 열고 외부에 노출된 상태로 기숙사 방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학습 환경의 강제적 조성과 도 넘은 인권 침해라는 오랜 기간 이어진 첨예한 갈등에 마침내 직권으로 방문을 닫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아직까지 생각나는 극적인 변화이다.
  • 의자에 앉는 애국조회(아침조회) 도입. 원래 애국조회 시간에는 한 시간 동안 모두가 일어서 있었어야 했다. 그래서 스피치를 하는 선생님이 착석을 허락하시면 환호를 보내고 그랬다. 여기에 교장 선생님은 앉아서 진행하는 애국조회를 도입했고, 모두가 의자에 앉아 애국조회를 진행할 수 있었다. 아침조회가 군국주의의 유산이라는 점에서 애국조회를 아예 없애는 방향도 검토했다고 들었다.
  • 교복. 민사고는 한복 교복을 사용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좀 부끄럽고 촌스럽다. 아직까지 1990년대 디자인한 교복을 소폭 개량하여 사용하고 있고 더군다나 국제 대회 등에 참여할 때 입을 옷 치고는 너무... 촌스럽다. 밝고 쨍한 색을 쓰는 것이 홍보 이미지를 보면 무슨 신흥종교 단체 같다. 아무튼 교장 선생님 시절 이것을 톤다운된 색깔과 정장처럼 깔끔한 원단과 디자인을 사용하는 개량한복으로 변경을 추진하고 있었다. 아래는 시연을 했을 당시 모습. 뿐만 아니라 현재 계속해서 논의되고 있는 (재학생 말로 그렇다고 한다) 성중립 교복 또한 이 교복이 도입되었다면 같이 논의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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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위 모든 것들은 저비용 고효율 정책들이다. 수면실은 방 하나를 비우고 수면의자 몇 개를 놓아주면 되는 것이고, 교복은 어차피 학생들이 구매하는 것이며, 의자 또한 학교 행사 때문에 원래 구매해놓은 것을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게 열어주신 것 뿐이다. 학생들의 살이 닿는 부분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자신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하셨다.

이 뿐만이 아니라 자사고인 민사고를 영재고로 전환하는 특수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어쨌든 이루어졌다면 훗날 폐교 관련 위험도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만약의 역사가 되었다는 것은 동일하지만.

하루아침에 포퓰리스트가 되다

그는 가뜩이나 인사강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변화의 마음가짐도 없이 적당히 부실경영하며 감투만 유지하고 있는 사람을 언젠가는 잘라내야했을 것이다. 지속적인 변화의 바람에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정치 다툼이 만연해있었고, 모두가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상태이다.

그러다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게 된다. 당시에는 전국민적 분노가 엄청났기에 당연히 학생들도 집회를 가겠다고 엄청나게 시위에 참석 요구가 높아진다. 짧게는 귀가주가 아님에도 외출하여 시위 참석을 허락해달라고 얘기를 하는 반면, 더 멀리는 아예 집회를 조직하여 나가자는 의견도 있었다. 교장은 비귀가주에 집회 참석을 불허한다.

가뜩이나 부패한 정권에 분노가 가득찬 상황인데 잘못 건드린 것이다. 특히나 전 정권의 청와대 수석 경력이 있는 교장 선생님이었기에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 "제 식구 감싸기" "학생들의 참정권을 제한하는 독재자" 라는 식의 물고 뜯기 아주 좋은 떡밥이 생긴 셈이다. 어쨌든 교장 선생님은 이미 다른 교사들의 미움은 사놓은 상태였으며 학생들에게는 구태와 악의 이미지가 반강제로 씌워진다.

여기에는 몇 가지 뉘앙스를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비귀가주 집회 참석 불허 조치를 학생의 참정권의 제한이라고 볼 수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1. 첫째, 이는 비귀가주에 해당하는 시위에 대한 불허 조치였다. 귀가주에는 누구나 시위에 참석할 수 있었다. 비귀가주에 시위를 보내달라고 무조건적 허락을 구하는 것은, 비귀가주의 존폐 혹은 외출 허락의 범주를 논해야 하는 것이지, '참정권'을 마법의 은총알마냥 모든 것에 허락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하다.
  2. 둘째, 뜻을 함께하는 다른 선생님을 구한다면 얼마든지 시위 참석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는 훗날 2019년 기후 위기 관련 대규모 집회 참석으로 확인된다. 그 누구도 인솔자를 찾아서 교육적 목적의 견학이라고 설득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3. 셋째, 정말 논란이 되었던 것은 교복을 입고 시위에 참석해도 되는가였다.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가겠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집회 참여자들은 당연히 나의 소속과 지위를 밝히기 위해 교복을 입는다고 주장했지만, 유튜브에 짧은 동영상이 올라가도 전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마당에, 자신 개인들의 신념을 민사고라는 좋은 확성기를 통해 전국에 알리고 싶은 것뿐이었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이는 매우 이기적인 작태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다못해 한 기업의 직원이 자신의 생각을 밝힐때도 "Thoughts are my own"이라고 명확하게 밝힌다.

물론 이 불허 조치에는 정권의 이해 관계가 얽혀있었다는 것은 명확하다. 나는 그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당시 상황과 조치가 학생 참정권의 제한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우며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① 원래 못 가는 때에 ② 할 수 있는 노력도 해보지 않고 ③ 학교의 이미지를 마음대로 사용하려 했으며 ④ 마지막에는 무작정 떼 쓴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시위를 빌미로 그냥 외출을 자유롭게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어딜 감히 헌법적 권리를 교장이 침해해!하는 단체적 분위기에 휩쓸려 시민적인 토론에 완벽하게 논점일탈이 일어났다.

어찌 되었든 나는 여기서 또 한번의 참담함을 느꼈다. 대한민국의 두뇌라고 하는 이들조차 어찌 이리 선동과 소문에 취약한가! 교사들은 새로운 시대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기회로 교장을 내쫓는가? 또한 교장은, 정치계의 고단수라는 사람이 노련하게 목소리 높은 학생들과 교사진을 구워삶고 설득하지는 못하고 고작 하루 아침에 사임하는가? 변화는 쉬우리라 생각했는가?

물론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을만큼 받은 상황이었다.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는 점,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시민적 토론을 기대했다. 이후에도 생각해보면 민사고에서는 다른 학교보다 토론이 많기는 했지만 온라인 포럼에서는 "키보드 워리어"에 버금가는 날카로운 말들이 오갔고 애국조회 시간에는 시민적 토론보다는 국회 청문회의 고성이 오갔다. 모든 의사소통이 진흙탕 싸움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일을 생생히 지켜봤고 기억한다. 나는 모두의 포용력에 매우 실망했다. 당시 교장 선생님과 학교 모두 잠재성이 있었다. 서로 합치가 안 된 것 뿐이다. 만약 서로가 서로를 잘 활용하고 이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만 있었다면 더 위대하고 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학교로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