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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종말 오류

역사적 중세는 어느 시점에서 끝나는가? 중학생 조성현을 매료했던 주제 중 하나이다. 중세를 바라보는 르네상스적 관점과 르네상스를 바라보는 현대적 관점 사이의 유사점을 살펴보자.

중세라는 용어는 고대의 영광과 르네상스의 지적 재탄생 사이에 끼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9세기에서 15세기 사이의 시기를 가리키는 역사적 용어이다. 중세(또는 라틴어로 medium aevum, middle ages)라는 용어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문명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던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졌다. 르네상스 학자들은 스스로를 고전 지식의 계승자라고 생각했으며, 고대로부터 분리된 시기를 문화적 침체와 쇠퇴의 시기로 간주했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해 그들은 고대 세계와 자신들의 시대에 비해 위대한 업적과 지적 능력이 부족하다고 인식한 이 시기를 중세 또는 '중간 시대'로 명명하게 되었다. 중세라는 용어는 고착화되었고, 오늘날에도 르네상스 학자들의 원래 관점의 무게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역사가들이 이 시대를 더 깊이 파고들면서 중세가 암흑과 무지의 시대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시대에는 과학, 기술, 철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대학이 설립되고 고전문학이 번성했다. 중세 학자들은 르네상스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고전 지식의 보존과 보급에 기여했다. 또한 토마스 아퀴나스, 로저 베이컨, 빙겐의 힐데가르드와 같은 인물들이 서양 사상의 흐름을 형성하면서 그들만의 지적 돌파구를 마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세를 경멸하는 르네상스 시대처럼 르네상스를 바라보는 현대의 시각도 이와 비슷한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16세기의 예술적, 문화적 공헌을 인정하지만, 특히 과학 및 공학적 방법론과 인간 사회의 정의성, 그리고 정치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시민 사회의 모습을 보며 끝없는 비판을 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한 인문주의 운동은 고전 텍스트 연구와 지식 추구에 큰 비중을 두었는데, 이런 운동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오스와 같은 존경받는 인물의 권위에 크게 의존한 나머지 새로운 과학적 방법론의 발전을 저해한 것이다. 경험적 조사, 회의주의, 과학적 방법 등 권위 있는 텍스트보다 증거에 기반한 추론과 실험을 중요시하는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르네상스는 현대 과학적 탐구의 엄격함과 정확성이 결여된 시대로 인식되는 것이다. 게다가 르네상스 시대의 공학적 업적은 당시에는 인상적이었지만 현대 세계의 경이로운 기술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 건설과 같은 16세기의 건축 업적은 우주 정거장이나 대형 강입자 충돌기와 같은 현대의 업적에 비하면 왜소하기 짝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르네상스는 고대의 기술과 현재의 혁신 사이에 서 있는 그 자체로 중세인 것이다.

다시금 생각해보면 2500년 쯤이 되면 우리도 결국 중세가 되는 것이다. 인간 과학 기술의 최고점에 달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역사는 항상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다. 결국 중세와 르네상스, 그리고 이 시대를 바라보는 현대의 관점은 인류 역사의 복잡성과 상호 연관성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자기 성장의 끝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우리는 앞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리라 생각한다.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의 오늘 또한 훗날의 중세가 됨을 기억하자. 미래는 결국 미성숙한 우리가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