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왜 나무를 낯설게 만드는가: 헨리크 칼손의 에세이 'How is music possible'
- 서양 음악에 익숙한 사람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장3화음을 칼라시족은 '이상하다'고 부르며, 옥타브 안에서 가능한 가장 불협화한 4음 음정보다 덜 듣기 좋다고 평가함
- 음악 심리학의 전통적 관점은 음악이 회화처럼 작동한다고 봄. 사람이 소리만으로 거리와 다가옴·멀어짐, 반향으로 공간의 크기와 형태, 미세한 멈춤과 음색 변화로 상대의 감정을 읽어내는 청각 처리 시스템을 음악이 갖고 논다는 설명임
- 저자는 음악을 거의 순수 추상이라고 부름. 음과 리듬의 수학적 관계일 뿐이고 바깥 현실과 거의 무관한 패턴인데, 그것이 너도밤나무 숲을 낯설게 만들고 아홉 살 딸이 눈을 감으면 작은 영화를 보게 함
- 소련 붕괴 직후 모스크바에서 녹음된 사미 요이크가 섞인 사라 파르크만의 믹스테이프를 듣다가, 저자는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열고 숲을 올려다봄
- 저자는 이 문제를 연구하는 음악 심리학자들도 상당히 혼란스러워한다고 보면서, 분야의 관점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눠 정리함
Hacker News opinions
음악을 별로 깊게 못 느끼는 편인데 이 글은 재밌게 읽었음.
그럼 감각 하나를 통째로 잃은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네.
쇼펜하우어 얘기가 나왔으니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읽어보면 좋음. 젊은 니체가 그걸 시랑 어떻게 연결시켰는지 나옴.
유튜브 뮤직에서 우연히 찾은 중국 곡 하나가 그날따라 뭉클하더라. 설명은 못 하겠고 좀 슬프고 향수 같은 게 올라오면서 세월이 빨랐다는 생각이 들었음.
근데 그 곡은 중국 음악치고 꽤 서양적임. 플레이리스트에도 파이널 판타지 곡이 있고 AI로 만든 곡도 섞여 있을 듯. 대표성은 없어 보임.
적어도 전통 중국 음악은 아님. 링크한 곡에서 들리는 장단조 조성은 전통 중국 음악에서 거의 쓰이지 않았음.
다음엔 차를 세우고 음악만 들어봐.
엔진 소리랑 바람 소리도 그 경험의 일부일지 모르지.
운전하면서 음악 듣는 게 진짜 동시에 되는 일인가 싶기도 하고.
음악이 왜 마법 같은지 말로 설명하려 들면 오히려 죽일 위험이 있음. 어떤 건 말하지 않는 게 나음.
설명이 어떻게 음악을 죽임? 파인만처럼 이해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도 많은데.
죽인다는 표현까진 몰라도 왜 즐거운지만 알면 충분하지 않나 싶음. 일상에서 신비랑 경외를 이미 너무 많이 걷어냈음.
헤드뱅잉 하는 이유를 알아도 헤드뱅잉은 계속 함.
나도 저자처럼 기존 이론이 영 만족스럽지 않음. 결국 자연선택으로 생긴 능력의 부산물일 텐데, 시각예술은 그 설명이 더 납득되고 음악은 덜함. 음악은 문자언어에 더 가까운 것 같음. 종이에 이상한 기호 보고 환각을 보는 것처럼.
찌르레기 떼의 군무는 왜 그렇게 보기 좋은 걸까.
테트라코드는 네 음이 필요한데 장3화음은 삼화음임. 원문 인용도 장3화음을 테트라코드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테트라코드 집합과 비교하는 거라 헷갈리는 대목임.
케타민 치료할 때 k-hole에서 현실과 붙어 있던 유일한 끈이 헤드폰에서 나오는 앰비언트 드론이었음. 다른 감각은 다 저 멀리 갔는데 그것만 남아 있는 게 신기했음.
음악은 뇌를 다른 사고 모드로 밀어 넣는 것 같음.
음악은 구체적 현실과 떨어진 순수 추상이 아님. 음향 매체로 전달되는 객관적 성질, 그것도 양적인 성질이 있고 질서를 드러냄.
그건 서양 고전음악 관점 아닌가. 불협화음이랑 4분음, 폴리리듬이 좋은 사람도 있음. 아름다움이 꼭 명료함인 것도 아니고.
음악이나 예술이 아예 없는 외계 문명이 있을지 궁금함.
지구에도 있음. 개미, 흰개미, 꿀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