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조각 장사에서 라디오셱까지, 찰스 태디와 세 개의 유통망
- 찰스 데이비드 태디는 1918년 5월 15일 태어나 1978년 11월 4일 사망했고, 태디코퍼레이션의 회장과 사장, CEO를 겸하면서 태디 레더, 라디오셱, 피어 1 임포츠 세 유통망을 만들거나 키워냄
- 1954년 아버지 데이비드 태디의 심장마비로 상속세를 위한 회사 청산 위험이 드러나자, 1955년 보스턴의 아메리칸 하이드 앤 레더가 태디 레더를 인수하는 차입매수로 뉴욕증권거래소 우회 상장을 성사시킴
- 10살 때 아버지 가게의 가죽 조각을 급우들에게 팔며 벨트 만드는 법을 가르쳤고, 부츠 회사 사장 아들을 둔 급우와 부츠 가죽 조각으로 벨트를 만들어 백화점에 납품함
- 라이스 인스티튜트 1학년 때 낙제한 뒤 1940년 텍사스 크리스천 아카데미를 졸업했고 하버드 경영대학원은 중퇴했으며, 1941년 해군에 지원해 6년 복무하면서 전쟁 채권 판매 기록을 세움
- 1950년 힝클리와 갈라서 힝클리는 신발 부자재 사업을, 태디는 가죽공예 사업을 가져갔고, 해군 병원에서 환자가 가죽공예로 재활하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가 전후 우편주문 사업 태디크래프트로 이어짐
Hacker News 의견들
라디오셱 추억이 많음. 어릴 때 전자 키트랑 미니 DJ 세트, 부품을 거기서 다 샀는데 동네마다 매장이 있어서 좋았음. 세인트루이스 몰마다 하나씩은 있었음.
비싼 건 맞는데 토요일 오후에 가면 일단 쓸 수 있는 걸 구할 수 있었음. $0.05짜리 저항을 $0.75에 파는 건 바가지지만, 그 접근성 자체가 취미를 굴러가게 해줌.
시골에서 PC 기술 일할 때 긴급 부품은 무조건 라디오셱이었음. 딱 맞는 부품은 없어도 어떻게든 됐고 값은 비쌌지만 일은 끝낼 수 있었음. 최근에 시리얼 젠더벤더 케이블이 필요했는데 동료가 '예전엔 이런 거 급하면 라디오셱 가면 됐는데'라고 하더라.
Forrest Mims 미니노트북은 페이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봤음. 카탈로그 아카이브는 radioshackcatalogs.com에 있음.
호주의 Tandy가 라디오셱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음. 영국도 마찬가지고, 자체 브랜드는 Realistic이었음.
햄 라디오 테크니션 자격증을 땄는데 부품 사러 갈 데가 없음. Ham Radio Outlet은 좋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음. 예전 1000-in-one 키트가 전자 부품 중독의 시작이었음.
라디오셱이 정보 수집의 선구자였다는 건 좀 그래. 계산대에서 이름과 주소를 안 주면 결제가 안 된다고 우겨서 항상 1600 Pennsylvania Ave로 적었음. 지금도 마이클스는 우편번호를 물어봄.
걔네 계산대가 SCO Xenix였음. 친구가 매장에서 일했는데 Ctrl-Alt-F4 눌러서 로그인 화면을 띄우니까 기겁하더라. /etc/inittab에 getty가 다 켜져 있었던 이유는 모르겠음.
내 첫 컴퓨터가 태디 2000이었는데 4개월 만에 죽었음.
난 태디 1000인데 아직도 켜짐.
1993년 책 Tandy's Money Machine을 중고로 $6.64에 샀음. 태디가 망해가던 라디오셱 지배지분을 $300k에 사들였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음.
상속세 때문에 회사를 청산해야 한다는 대목이 아깝다. 의결권 없는 주식을 에스크로에 넣고 수십 년에 걸쳐 파는 식으로 시간을 맞출 방법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미국에서 독립 라디오셱 매장보다 태디 레더 매장이 더 많음.
아는 태디 가문 사람이 있는데 부유한 집안 출신인 걸 전혀 몰랐음. 세인트 토마스에서 흰 밴으로 5갤런 물통을 팔았음.
Radio Shack 전단에 실린 Jonathan T. Frye 칼럼은 아무도 언급을 안 하네. 자체 녹음테이프 회사를 만들었단 얘기, 미국 매장 1000개와 2000개 달성 얘기가 거기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