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자공에서 정비공이 된 증조부, AI 앞에 선 개발자에게 던지는 가족사
- 저자의 고조할아버지는 프랑스 Mandres-en-Barrois에서 편자공(farrier)으로 말에 편자를 박고 수레를 고치다가 자동차가 등장하자 정비공으로 전업했고, 이후 가족이 대대로 정비소를 이어감.
- 저자는 개발자들이 코딩 자체보다 무언가를 만들고 문제를 푸는 일에서 보람을 얻는다고 보고, 'how를 놓아줄 줄 알고 why를 붙잡으라'는 한 줄로 글을 맺음.
- 댓글에서는 재훈련은 대부분 신화라는 반론이 나옴. 숙련 노동자는 서비스직으로 하향 이동해 젊고 덜 숙련된 노동자를 밀어낸다는 NYT The Daily의 NAFTA 에피소드가 인용됨.
- 말 비유에 대한 반박도 나옴. 말은 실제로 일자리를 거의 다 잃었고 센트럴파크 관광용 몇 마리만 남았다는 지적.
- 댓글러들은 라이터맨이나 시장 원예사처럼 직업 자체가 사라진 가족 사례를 들며, 기술은 자원과 자본 집중의 촉매였을 뿐이라고 지적함.
Hacker News opinions
우리 할아버지는 활판 인쇄소를 했는데 사진 식자가 들어오니까 재교육은 안 받고 그냥 점점 작은 일만 맡다가 결국 청첩장 만드는 데로 밀렸음.
'재훈련'은 거의 신화임. 숙련 노동자는 서비스직으로 내려앉고 그 자리에서 젊고 덜 숙련된 사람을 밀어내는 구조더라. NYT The Daily NAFTA 편에서 다뤘음. AI는 NAFTA의 스테로이드 버전임.
우리 증조부도 말이 자동차 때문에 다 실직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다 그렇게 됐고 예전으로 안 돌아갔음. AI와 로봇이 못 하는 일자리 비율은 시간이 지나면 0에 수렴한다고 봄.
그 논리면 증기와 철이 못 하는 일자리 비율도 0에 수렴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더 나쁜 건 말 거의 전부가 사라졌다는 거임. 센트럴파크에서 관광객 태우는 몇 마리만 남았는데 그걸 보며 '우리도 괜찮을 거야' 하는 사람들이 있음.
지금 상황만 보고 예측한다고 단정할 수 있나 싶음. 일자리가 변형되거나 새로 생기지 않는다는 가정이 깔려 있는데, 편자공도 자동차를 처음 보고 나서야 정비공이 뭔지 알았음.
로봇과 자동화 쪽에서 일하는데, 사무직과 창작 직군만 AI로 난리 나고 농사나 위험 작업 같은 몸 쓰는 노동은 그대로인 게 답답함.
장기적으로는 어차피 다 죽음. 그래서 로봇이 실용화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가 중요함. 자율주행차는 15년째 얘기하는데 대부분 지역에서 못 씀. 식기세척기도 넣고 빼야 하고 로봇청소기도 관리가 필요함.
말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은 거래였음. 하루종일 들판에서 건초 먹고 사는데 수레 안 끌어도 되니까.
되게 긍정적인 글이네.
그게 바로 선전의 특징임.
AI 공포 담론의 핵심은 두 가지임. 사람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착각, 그리고 인간이 적응 못 한다는 착각. 역사적으로 파괴적 기술이 수도 없이 나왔고 인류 전체는 번영했음.
LLM 옹호자들은 비판받으면 '이런 건 본 적 없다'고 하고 사회 영향 얘기하면 '예전에도 있던 일'이라고 함. 지금 흘러가는 돈의 규모와 정부가 경제를 움직이는 건 전례가 없음.
적응은 하는데 적응한 뒤 내 삶이 나아지는지는 별개임. 공장 노동자는 적응해서 월마트랑 달러제너럴로 갔음.
만들고 문제 푸는 게 좋아서 개발자가 된 사람인데, 이제 숙련도가 필요 없고 도전도 없어짐. 마크다운 읽는 소모적인 하루만 남았음. 대신 취미로 하는 펜테스트는 여전히 재미있음.
AI 쓰면서 숙련이나 도전이 없다고 하는 건 좀 이상함. '이거 만들어. LGTM. 다음 거 만들어'만 반복하는 거 아니면 배울 건 계속 있음.
한쪽 증조부는 시장 원예사였는데 농부가 되지 않았고, 다른 쪽은 라이터맨이었는데 선장이 되지 않았음. 직업이 그냥 사라지는 경우도 있음. 둘 다 자원과 자본 집중 때문이었고 기술은 촉매였음.
냉소적으로 보면 저자가 바이브 코딩 회사 홍보에 할아버지 이야기를 이용하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음.
'예전에 한 번 있었던 일이 잘 풀렸으니 비슷한 일은 걱정하지 마라'는 식으로 들림.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잘 안 풀린 경우는 다 빼먹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함. 귀 막고 라라라 하면 일부한테는 통하겠지만 그게 모두에게 통하는 논거는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