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가 문자를 비판한 파이드로스 274c: '기억의 약이 아니라 상기의 약'
- 기원전 370년경 플라톤의 파이드로스(274c-275b)에서 소크라테스는 이집트 왕 타무스의 입을 빌려, 테우트가 발명한 문자가 기억을 키우기는커녕 망각을 낳고 배우는 이에게 지혜의 겉모습만 준다고 비판함
- 문자는 그림처럼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으면 언제나 같은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하고 불의하게 비난받아도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음. 소크라테스는 배우는 이의 마음에 지혜로 새겨져 스스로를 변호하고 누구 앞에서 침묵할지 아는 '살아 있는 말'을 문자의 정당한 형제로 둠
- 토론 참가자들은 소크라테스가 새 기술을 깐 게 아니라 구술 문화와 떠오르는 문자 문화(플라톤) 사이의 사회적 차이를 대비한 것이라고 짚음. 구술 문화에서는 관점에 되물어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글은 일방통행이라 '믿으라'는 태도가 되고, 월터 옹이 《구술성과 문자성》(1982)에서 비슷하게 논증함
- 인용문의 'word' 상당수가 그리스어 로고스라서 말, 논증, 이성, 논리에 가까운 단어인데, 번역에서 그 뉘앙스가 빠진다고 지적함
- 글쓴이는 1889년 전화와 전기의 위협을 다룬 기사, 15세기 인쇄술을 성토한 글에 이어 이 대화를 모으며, 진보에 대한 혐오가 기술 자체보다 인간의 성향에서 나온다는 가설의 자료로 씀
Hacker News opinions
처음엔 소크라테스가 문자 까는 게 그냥 괴짜 소리인 줄 알았는데, 말 뜻이 시대와 사람마다 이렇게 달라지는 걸 직접 겪고 나니 문맥이 얼마나 사라지는지 알겠더라. '어렵다', '쉽다', '재밌다', '좋다', '나쁘다' 같은 말은 사람마다 정의가 완전히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그게 좀 소름 끼침.
회사 생활 초반에 'have'에 뜻이 다섯 개나 있다는 걸 빨리 깨달았음.
언어 전체의 문제인 듯. 받아쓰면 말투나 의도, 몸짓 같은 게 다 사라지잖아. 소크라테스는 되묻기처럼 처음 준 정보 너머로 가는 것도 염두에 둔 것 같고. 생각이 구체적인 영어 구조로 옮겨질 때 뭘 잃는지 궁금함. 꿈이나 환각 상태가 '말로 안 바꾸고 아는' 상태에 제일 가깝지 않나 싶음.
호메로스 새 번역본에서 봤는데 기억 자체가 기술임. 책이나 노래를 외우려고 만든 게 아니라, 기억에 의존하던 시절엔 운율과 반복으로 지식을 구조화했음. 우린 그걸 잃었고. 계산기 때문에 셈 못 하는 사람, 차 때문에 1km도 못 걷는 사람 보면 AI도 똑같이 될 듯.
근데 전화 게임 생각해 봐. 여러 세대에 걸친 전화 게임이 정확할 리가 없잖아. 그래도 안 쓰는 게 낫다는 건 아니라고 봄.
인용문에서 'word' 나오는 자리 대부분이 그리스어 로고스임. 말, 논증, 이성, 논리에 가까운 단어라서 뜻이 확 뒤집히진 않지만 뉘앙스는 좀 빠짐.
모든 기호는 자기 주관적 경험으로 정의된다고 봄. 같은 사과를 봐도 각도가 달라서 빛이 다르게 반사되고, 우리는 같은 장면 순서를 본 적이 없음. 그래서 둘의 머릿속 모델이 필연적으로 조금씩 다름. 의식의 어려운 문제가 안 풀리는 이유도 이거 아닐까.
소크라테스가 2000년 전에 AI 얘기하는 것 같아서 어지럽다. '질문하면 언제나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는데 문자는 종이 위의 인공적인 표시니까 지능을 심문한 셈이고, 근데 그는 말로 심문했잖아. 철학적 매듭에 빠져서 나옴.
그건 문자로 알 수 없음. 플라톤이 그렇게 썼다고 했다는 것만 알 뿐이고, 어쩌면 플라톤이 소크라테스 입에 말을 넣었을 수도 있음.
소크라테스는 구술 문화와 새로 뜨는 문자 문화(플라톤)의 엄청난 사회적 차이를 대비한 거임. 새 기술이라서 거부한 게 아님. 구술 문화에선 관점에 되묻고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글로 쓰면 일방통행이라 그냥 믿으라는 태도가 됨. 그리고 구술 세계에 맞춰 진화한 인간은 긴 서사시를 외울 만큼 기억을 굴렸는데 문자와 컴퓨터가 그걸 약화시켰음. 월터 옹이 《구술성과 문자성》(1982)에서 비슷한 주장을 함.
일곱 번째 편지를 보면 논증 범위가 철학에 관한 글쓰기로 한정됨. 철학은 다른 지식처럼 설명이 안 되고, 오래 함께 얘기하고 살다 보면 한 영혼에서 불꽃이 옮겨붙듯 갑자기 빛이 켜진다고. 불친절하게 보면 비판이 두려운 거고, 친절하게 보면 악의적인 트롤에게 안 노출될 선의의 환경을 원한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