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TO에서 본 미래를 PC로 옮긴 Ray Ozzie와 Lotus Notes의 시작
- Ray Ozzie는 일리노이대 재학 중 PLATO의 개인 노트, Talkomatic 실시간 채팅, Consult 화면 공유를 쓰고, 졸업 후 산업계가 컴퓨터를 통신 도구로 거의 안 쓴다는 사실에 충격받아 1984년 Tim Halvorsen, Len Kawell과 Lotus Notes 개발을 시작함
- 개발 비용의 50~60%를 메모리 관리에 썼고 컴퓨터 RAM이 256KB이던 시절이었으며, 1989년 OS/2와 Windows 동시 출시 후 Unix 2종, Mac OS, NT로 플랫폼을 늘림
- 자원 배분 기준은 '더 많은 사람이 쓰게 하는 것이 인터페이스 완성도보다 중요하다'였고, 표준이 정해지지 않은 시기라 목표는 사용자와 기술의 적합 맞추기였음
- HN 댓글에서는 Lotus가 1-2-3 스프레드시트를 만든 회사 이름이고 제품은 Notes라는 지적과 함께, Notes가 자체 UI 패러다임과 자체 앱 개발 언어를 갖춘 자기완결적 제품이라 그룹웨어로는 나쁜 제품 관리였다는 평가가 나옴
- Groove와 Live Mesh를 함께 만든 동료는 Ray Ozzie가 비즈니스 요구사항부터 코드, 아이콘과 색까지 직접 챙기면서도 팀이 반박하게 놔뒀다고 증언함
Hacker News opinions
polish는 보는 사람 눈에 달렸다는 말, 맞긴 한데 취향과 전문성 문제이기도 함. Lisp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 완전 동의.
근데 이 글 스크롤바가 왜 없음? 읽기 진짜 불편했음.
재밌게 읽었음. 시대 사이에 살면서 만드는 사람이라는 주제가 와닿음. Lotus가 그냥 이메일 클라이언트가 아니라 대학 공유 컴퓨터의 협업 기능을 PC로 옮기려 한 시도로 보임.
그건 Notes 얘기고 Lotus는 1-2-3 스프레드시트 만든 회사 이름임.
Notes는 너무 크고 자기완결적이라 그룹웨어로는 나쁜 제품 관리였음. 자체 UI 패러다임에 자체 앱 개발 언어와 런타임까지 있었으니 4GL 연상임. 그룹웨어가 웹브라우저만큼 중요해진 평행우주는 없음.
Lotus Notes랑 Groove 둘 다 해봤는데 Ray는 요구사항부터 코드, 아이콘 색까지 다 챙기면서도 오만하지 않고 팀이 반박하게 놔둠.
Live Mesh 기억함. mesh 안 아무 컴퓨터에나 원격 데스크톱 붙는 게 정말 앞서 있었는데, 동적 DNS에 RDP 포트 열어야 했던 시절에 그냥 됐음. Tailscale이 그 자리를 대신함.
Live Mesh 초기 사용자였는데 왜 안 퍼졌는지 이해가 안 갔음. 지금 보면 iCloud Photos가 비슷하게 구현했고 앱은 기본이 협업임.
Groove 진짜 그리움. 2010년쯤 작은 에이전시에서 큰 파일 주고받기가 일이었는데 두 컴퓨터에 동기화해놓고 시연했더니 반응이 없었음. '그냥 되는' 소프트웨어가 그렇게 드묾.
AI 시대면 우리가 그리워하는 옛 소프트웨어 부활이 훨씬 쉬워졌을까?
Ray는 훌륭한 아키텍트였고, MS 직원들이 기술자도 회사 최상단에 자리가 있다고 느끼게 해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