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식이요법은 음식의 열·냉과 습·건, 간이 만드는 혈액으로 건강을 설명했다
- 갈레노스 의학은 음식을 열·냉, 습·건의 성질로 나누고 나쁜 음식이 병을 일으킨다고 봤으며, 중세 건강 지침의 상당 부분이 음식 목록과 신체 영향 설명으로 구성됨
- 중세인은 소화가 위·장, 간, 전신에서 차례로 일어난다고 생각했음. 위와 장은 음식을 유미즙으로, 간은 유미즙을 혈액과 흑담즙·황담즙으로 바꾸며 혈액이 몸에 열기와 습기, 생기를 준다고 설명함
- 주식은 죽과 빵 같은 가공 곡물이었고 계층에 따라 달랐음. 부유층은 좋은 밀의 발효빵을 먹었지만 빈곤층은 차고 가스를 만든다고 여긴 보리빵이나 약한 혈액과 적은 에너지를 만든다고 여긴 호밀빵을 먹음
- 과일과 채소도 먹었지만 양배추류는 우울과 악몽, 상추는 차고 습해서 위험, 순무와 파스닙은 가스와 성욕을 일으킨다고 여김. 콩은 가스와 나쁜 체액, 어지럼증을 유발한다고 경계했고 완두콩은 더 잘 소화된다고 봄
- 사과·복숭아·체리는 차고 습해 부패한 체액을 만든다고 의심했지만 조리하면 안전해진다고 봤음. 버터는 좋은 혈액을 만드는 음식, 치즈는 소화가 어렵고 방광결석을 일으킬 수 있는 음식으로 분류했으며 달걀은 흰자보다 노른자를 건강하다고 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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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는 정제당이 아주 드물었지만 건포도는 이탈리아 등에서 수입해 널리 썼다고 봄. 무화과, 귤 껍질, 커런트를 넣은 건포도 빵은 축일 음식이었고, 슈톨렌과 파네토네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함.
냉장이 없던 시절 생선과 가금류가 빨리 상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들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고 봄.
위생 환경에서는 빨리 상하거나 병을 옮기는 음식이 실제로 해로웠을 수 있음. 이유를 몰라도 금기를 만들어 피하는 건 아주 비합리적인 대응은 아님.
글이 개별 식품에만 매달린 느낌임. 당시에도 지금처럼 근거가 약한 여러 식이 이론이 충돌했고, 육체노동자의 높은 열량 수요에서는 설탕의 의미가 비만 사회와 달랐을 것임. 콩이 가스를 만든다는 관찰은 사실이기도 하고.
갈레노스가 식이를 중시한 이유에는 식량 생산이 대다수 남성의 일이었고, 글을 쓰는 교육받은 남성의 관심사였다는 점도 있다고 봄. 여성의 노동과 중요성을 기록에서 놓치는 문제는 지금 역사학이 더 파고드는 부분임.
수도원 밖에서 글을 읽는 남성과 직접 농사짓는 남성이 겹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을 것임. 농부가 밭에서 점심을 새로 해 먹기보다 아침에 빵과 단백질을 챙겨 갔다는 설명이 더 그럴듯함.
여성도 아이와 함께 밭에서 일했음. 밭일하는 사람은 조리할 필요 없는 음식을 가져갔고, 아이가 식사를 나르는 일도 했으니 밭에서 각자 알아서 요리했다는 상상은 맞지 않음.
냉장 없는 생선은 빨리 상하고 설탕은 희소한 고열량 식품이었으니, 당시 조건에서는 '생선은 나쁘고 설탕은 좋다'가 말이 된다고 봄.
식품을 말리고 소금에 절여 보존하긴 했지만, 물고기는 원래 소금물에 사니 기생충과 벌레가 그 과정에서도 살아남았는지 궁금함. 소금 절인 음식은 조리 없이 먹기도 했을 것 같음.
오늘 식품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임. 근거가 단단하지 않은 주장인데 관찰 일부가 맞아 보이면 이론을 진실처럼 받아들이고, 지금은 논문이 그 역할을 대신할 때도 있음.
글은 체액설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봄. 중세 의학은 어떤 음식도 절대적으로 좋거나 나쁘다고 하기보다 개인의 기질과 체액 균형에 맞는지를 따졌고, 습한 음식도 담즙질 기질에는 권할 수 있었음.
과거의 좋고 나쁨은 영양보다 보존성과 식품매개 질병 문제였다고 봄. 오늘은 보존과 치료, 식품 공급이 훨씬 나아져 영양이 남았지만, 근거 없는 식이 이론 자체는 여전히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