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런스 타오: 목표만 푸는 AI가 수학의 우회와 탐색을 지울 수 있다
- 테런스 타오는 아이들이 '가장 큰 수'를 겨루다 상대 수에 항상 1을 더하면 된다고 깨닫는 놀이가 자연수의 무한성과 증명 개념을 스스로 익히는 사례라고 설명함
- 타오는 아이들에게 무한과 자연수의 무한성을 바로 강의하면 호기심에서 출발한 놀이의 탐색, 학습, 재미를 일찍 끝내게 된다고 주장함
- 타오는 순수수학이 겉보기에는 쓸모없어 보이는 질문도 다루며, 나비에-스토크스 전역 정칙성 문제를 그런 예로 듦
- 타오는 감독 없이 목표만 향하게 한 AI 도구가 문제를 풀 수는 있어도 그 과정의 교훈, 통찰, 협업, 다음 연구 문제를 잃게 할 수 있다고 우려함
Hacker News opinions
기관이 이런 탐구를 허락해 주길 기다리는 것 자체가 이상함. 이 글은 기관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도 보여준다고 봄.
아이 생일 파티에서 피냐타를 보면 알겠더라. 어른은 비효율만 보지만 아이는 막대기를 휘두르며 빗나가는 과정까지 즐기고, 그게 마지막 사탕 쟁탈전의 기대감을 키움.
사람들이 어린 시절을 정말 잊었다기보다 기억해도 말하지 않는 것 같음. 어른으로 사는 방식과 충돌해서인지 인지부조화가 생김.
나는 피냐타가 폭력을 놀이로 만드는 점이 싫음. 효율 문제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음.
스페인 축제장의 자석 낚싯대 게임은 더 심함. 10유로를 내고 20초쯤 낚시해서 동네 가게에서 2유로면 살 경품을 받는데, 7살 아들은 수학을 좋아하면서도 계속 하고 싶어 함.
그래도 즐거움은 얻는 순간보다 기다리고 하는 과정에서 많이 나옴. 결과나 목표보다 과정과 현재에 집중하면 행복이 늘어날 거라고 봄.
피냐타는 재미있다 해도, 나는 아이가 다른 아이의 이를 부러뜨리거나 다치게 하는 장면이 먼저 보임.
앨런 와츠 영상처럼 일을 놀이로 보고 결과보다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관점은 가능하다고 봄. 음악을 연주하듯 일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얘기가 와닿았음.
억지로 편안함과 숙련의 지점을 넘어서 몰아붙이지 않으면 더 즐기면서도 오히려 효율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더라.
그건 좋은 이야기지만 대부분 사람에게는 현실이 아님. 많은 사람은 일을 놀이로 볼 여유 없이 일하지 않으면 거리로 나앉음.
관점을 바꿀 통제력은 있어도 정상적으로 살라는 외부 압력이 너무 큼. 나는 40대인데도 탐색하고 장난치는 습관을 유지했고, 뒤늦게 ADHD 진단을 의심할 만큼 남들과 달랐지만 지금 삶에는 만족함.
직장에서 15만 파운드짜리 Nexus 9000 스택을 로블록스처럼 만지며 알아내라는 일을 받으면 놀이처럼 느껴짐. 코어 네트워크와 VM 서버, SAN을 잇는 장비인데 문서는 하나도 없었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아동문학이 뛰어난 이유도 아이였을 때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아이로 사는 감각을 기억했기 때문이라고 봄. 아이는 어른이 사소하다고 보는 것에 끝없이 호기심을 보임.
아이의 이해력은 과대평가하고 어휘력은 과소평가하기 쉽다고 봄.